본문 바로가기
여행/해외

[프라하] 프라하에서의 우여곡절 첫 날

by 클캉 2019. 2. 27.
반응형


이번 여행은 아마도 가기 전 날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032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항공사에서 오버 부킹이 되었으니 표를 바꿔달라는 부탁이었다.

대신에 보상금을 2명이서 약 76만원 정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항공표도 12시 10분에서 12시 15분으로 바뀌어 5분 차이로 70만원이나 받을 수 있다니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대화에 진도가 안나갔다.


"공항에는 언제 오실 예정이세요?"

"내일 오전 9시정도까지 갈게요."

"저녁 9시 말씀하시는거죠?"

"아니요, 내일 12시 비행긴데 왜 저녁에 가야되요?"

"???, 내일 낮 12시가 아니라 오늘 저녁 12시에 타는 비행기에요."


그랬다.

나는 내일 낮 12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저녁 12시였다. 티케팅할 때 소이한테


'저녁에 퇴근하고 몸만 공항으로 와, 내가 트렁크 옮겨놓을게'

라고 했던게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 소이에게 

'내일 낮 12시가 아니라 오늘 밤 12시였어 바로 집으로 뛰어가서 짐 챙겨서 공항으로 가자'

라고 말하는 순간 항공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내일 12시 대한항공 직항으로 바꿔줄테니 그렇게 하시겠냐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일 낮 12시에, 직항에, 70만원 용돈까지.

오버부킹 안되고 내일 낮 12시인 줄 알고 자고 있으면...

끔찍하다.

여행사 출신이라고 큰 소리 뻥뻥쳤는데 순조롭게 여행을 시작한 적이 별로 없다. 여권문제로 신혼여행도 따로 출발한 전적이 있어서 앞으로 티켓팅은 나를 못믿을거 같다.

 


이제 비행기에서의 11시간을 시작한다.

정말 지루한 시간이었다. 소이와는 자리가 없어 따로 앉아서 가서 더 심심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3편을 처음으로 다 봤다. 런닝타임이 3시간씩이라 얼추 시간을 잘 때웠다.

반지의 제왕을 보니 이제서야 조혜련이 따라한 골룸이 무언지, 왜 누군가를 엘프같다고 하고 호빗같다고 하는지, 또 누군가를 오크같다고 하는지, 왜 롯데타워가 사우론의 탑이라고 했는지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되었다.

근데 그다지 재밌진 않았다.

착실히 사육당하고 나니 프라하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꾸겨졌던 몸을 피고 케리어를 찾으러 갈 때가 항상 기분 좋다.

공항에서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첫 번 째가 현금 인출이었다.

아무리 해도 돈이 안뽑아져서 당황했는데 이 놈들이 금액을 20,000 코루나부터 보이게 하고 다음 화면에 2,0-00 코루나가 나오게 해놨다. 20,000 코루나면 거의 100만원인데 너무 액수가 커서 뽑히지 않는거였다. 공항이라 외국인들이 어리버리 탈 때 대량 인출을 유도하는 수법이었다. 그게 바로 나다. 다행히 인출 한도 제한이 있어서 살았다. 2,000 코루나 선택으로 인출은 성공.

두 번째는 소이의 심카드가 작동하지 않는거였다.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하나 고민했다. 우버를 타고 싶었지만 인터넷이 안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중앙역까지 가는 길에 소이가 뭐 어쩌구 저쩌구 재설치 하더니 그 때 부터 작동되어서 다행히도 예약해놓은 에어비앤비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아 참고로 나는 별로 연락올 때도 없고 그래서 심카드를 따로 사지 않았다. 그래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랑 연락, 택시 부르기, 지도 보기 같은 중요하지만 귀찮은 일은 소이가 다 했다. 일부러 심카드 안산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들었다. 편했다. 다음에도 안사야지~

에어비앤비 숙소는 아늑했다.

짐을 놓으니 마음이 놓인다. 11시간의 비행과 8시간의 시차와 숙소까지 오는 길의 긴장감이 한 번에 밀려와 녹초가 되었지만 체코의 맥주를 빼놓고 잘 수는 없지.

내가 아는 프라하의 맛집인 브레도브스키 드부르 레스토랑에 갔다.

사실 난 프라하가 4번째 방문이었다.

이역만리 떨어진 프라하를 목포보다 많이 가봤다. 간지?


 

 


첫 번째 방문 이후 2, 3, 4번째 방문 목적에는 분명 이 꼴레뇨와 맥주에 있다.

꼴레뇨는 너무 맛있어, 쫄깃하고 바삭하고 기름지다.

여기에 알싸한 홉의 풍미가 살아있는 필스너 우르켈 한 잔을 마시니 이제야 내가 프라하에 다시 왔구나 실감이 났다.

여행의 상당부분은 맛으로 기억된다.

밥을 먹고 나와 간단히 시내를 둘러봤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소이님은 프라하의 봄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광장의 많은 상점들만 보였는데 소이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잔뜩 모인 바츨라프 광장을 상상해봤다.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촛불집회도 나중에는 역사속에서 큰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현장에 있었다니 나중에 어린노무 쉐끼들한테 썰을 풀어줘야겠다.

'나 때는 말이야 촛불하나 들고 혁명하고 그랬어~'

맥주를 먹어 오줌이 너무 마려운데 동전이 없어서 화장실도 못가고 바지에 한 방울씩 싸서 말리고 있었는데 스타벅스에서 화장실을 무료로 열어줘서 다행히 오줌을 쌀 수 있었다. 그제서야 프라하의 아름다운 야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야경은 변함없었다. 다만 날씨가 너무 추웠다. 그래서 사람이 별로 없던 점은 좋았다.

카를교를 건너갔다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쓸데 없는 이야기도 하고 재밌게 산책했다. 강가에서 야경을 조금 보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세상의 모든 피로가 농축된 밤이었다.

내일 뭐할까 생각할 힘도 없이 잠이 들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