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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문화컬쳐

[아빠 얼굴 예쁘네요] 성인이 봐도 좋은 어린이극

by 클캉 2019.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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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노출안하기로 소문난 김민기님이 JTBC 뉴스룸에 나왔을 때 그의 가슴을 울리는 저음의 인터뷰는 차라리 음악에 가까웠다. 학전에서 올린 공연들을 쭉 정리한다는 인터뷰를 하고 얼마 후 페이스 북에서 '아빠 얼굴 예쁘네요' 소식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서 지려버리고 바지를 갈아입었다. 모든 대사와 음악을 달달 외워버릴 정도로 좋아하는 공연이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공연을 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는 데뷔와 동시에 군사 정부에게 찍혀서 데뷔앨범도 없이 소작농, 공장 노동자, 광부로 일을 했다. '아빠 얼굴 예쁘네요'는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면서 마을 아이들의 일기와 글을 모아서 만든 어린이 노래극이다. 누구는 하루 하루 밥벌이와 카드빚을 걱정하는데 민기형님은 삶과 죽음속에서 진동하며 사신 것 같다. 그의 생 앞에서 롤이나 하고 자빠지는 나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지는데 어쩌겠나 그것이 내 그릇인걸.

김민기의 앨범 곳곳에 '백구'나 '인형' 등과 같이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노래하는 곡들도 많고 아동물의 연극을 많이 만드는 걸로 보아 김민기는 어린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 같다. 덕분에 민기형님의 음악을 들으면 콧잔등이 짠해진다. 다시 조그마한 나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루하리만큼 천천히 흘러갔던 그 겨울 날 처럼.

김민기는 한국 어린이들이 서양의 월트 디즈니식 환상에 길들여지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 결과 현실에 기반을 둔 한국적 정서의 어린이극을 많이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아빠 얼굴 예쁘네요'다. 나는 방금 이 공연을 보고 와서 감동의 여운이 가시기 전 '아빠 얼굴 예쁘네요'에 대한 감상을 적어 놓고자 한다.


1. 김민기 작사 작곡, 이병우 편곡

 한국적 포크는 김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한국적 정서와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담하게 멜로디에 담아낸다. 이 노래극에서도 마찬가지로 김민기표 멜로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유지하며 통일감을 준다. 재밌는 점은 편곡과 연주를 이병우가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떤날의 이병우가 맞다. 이 노래극이 1987년에 탄생했고 어떤날 1집이 1986년, 2집이 1989년에 나왔으니 그 당시 이병우는 어떤날의 이병우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과 이마를 탁치고 탁치고 두번을 쳤다.

그 덕에 '첫 눈'이라는 첫 트랙은 어떤날 1집의 '겨울 하루'와 그 결이 닿아있는 느낌이다. 옹골찬 기타 멜로디도 그래서 그랬다. 이병우라 그랬다. 최근 공연에서는 긱스 출신의 정재일이 음악감독을 했는데 원곡과는 다른 약간의 변화들이 있었는데 좀 더 요즘 느낌이 나는 느낌이다.

역시 내가 딱 처음 듣는 순간 노래들이 레베루가 다르다더니 역시 나의 달팽이관은 고급인거 같다. 귀로 먼저 알고 그 다음 가슴으로 알고 그 다음 머리로 노래를 듣는 내 자신이 너무 멋있다.

 

 


2. 현대미술에 가까운 무대 연출

 최초에 공연에서는 슬라이드 필름을 영사하는 방식으로 초연했다고 한다. 그 당시 슬라이드 필름은 상당히 고가고 최신의 장비였다. 교회에서 어렸을 때 찬송가 가사를 슬라이드 필름으로 화면에 띄어줬는데 이 기계를 옮길 때는 비싼거니 조심하라고 어른들이 많이 말씀하셨다. 그럴거면 지들이 옮기던가. 아무튼 지금은 영상의 시대, 슬라이드 필름은 영상으로 대체 되었는데 이 영상들이 상당히 고퀄이었다.

첫 장면에 연이가 첫 눈이 와 창문을 열고 눈쌓인 풍경을 바라볼 때가 영상미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동양적인 풍경이 확대되며 연이가 풍경속으로 극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차라리 이 장면은 현대미술에 가깝다고 생각이 되었다. 영상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한정된 공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노하우가 바로 학전의 역량이다. 학전은 오랜 역사 동안 끈질기게 발전하고 있는 단체임에 틀림없다. 김민기 선생님 최고다.


3. 따듯한 메시지

 요즘애들이 연탄가스 마시고 동치미 국물을 먹어봤겠어,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 맛 후루룩짭짭을 해봤겠어. 그래서 연극은 연이 아빠의 석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극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석탄이기에 이 설명 이후 그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설명인 것 같다.

 노동자에 대한 애정, 가족 공동체, 마을 공동체, 인류애가 잔뜩 뭉뜽그려져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구성한다. 도시에 태어나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것들을 어렴풋이 동경하게 된다. 특히, '아빠 오실 때' 라는 노래가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되는데 이 곡이 나올 때 울어버렸다. 최근 아빠와 싸운 것이 영향을 주었나? 아님 실제로 눈 앞에서 이 곡을 보게 되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따듯한 눈물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극이 감동스러운건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연극들은 한 번 나가면 재출입이 어렵다고 공연 시작 전부터 겁을 줘서 나의 유리방광은 그 때부터 바운스 바운스 하는데 어린이 극이라 그런지 문이 열려있다고 알려주었다. 이 얼마나 인간미가 넘치는 공연인가. 더불어 주변에 아이들이 정말 많은데 '왜 겨울이 설날이야, 설날은 8월 아니야?' 등의 아이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보너스다.

 그래서 이 공연은 공연장에서 보면 감동이 두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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